[퇴사일지 #1] 퍼포먼스 마케터 어기의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1. 전공을 살리다보니 마케터가 되었다.
    내 전공은 광고다. 내가 전공을 광고로 선택할 시절만 해도 대부분의 광고인들의 꿈은 칸 광고제에 이름을 올릴만큼 크리에이티브한 TV 광고를 만드는 것이었을 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를 마구 쏟아내는 동기들 사이에서, 슬프게도 나는 꽤 명확히 나를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덕분에 명확한 강점도 알게되었다.
    나는 맥락이 중요한 사람이고, 세상에 없는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즐거워하기보다, 그것이 결국 어떠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지에 대한 기획을 하는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동기들이 광고 PD, 아트디렉터, 카피라이터, 광고 기획자로 일할 때, 나는 스타트업 마케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2. 피트니스 O2O 스타트업 마케터의 일
    마케터는 흔히들 잡부라고 하는데, 스타트업 마케터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이제 막 서비스를 시작하는 피트니스 O2O 스타트업 마케터 인턴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처음에 내가 부여받은 입무는 고객 유입을 위한 블로그 마케팅이었다. 제휴 센터를 방문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앱으로 유입을 늘리기 위한 포스팅, 그리고 피트니스 관련 정보를 카드뉴스로 만들어서 업로드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처음에는 그 과정이 재미있었고 성과도 좋았다. 앱 유입의 80%가 블로그 콘텐츠로 유입 될 정도였다. 퍼블리셔와 소통하며 홈페이지 UI, UX 디자인도 하고, 앱을 대표하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동료 마케터와 페르소나도 정의하고, 캐릭터를 앱에 적용해보기도 하는 등 정말 여러가지 일을 했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 대표를 포함한 몇 개의 문제가 있었고, 결국 퇴사를 했다. (많은 스타트업이 그러하 듯, 지금은 없어졌다)
  1. 콘텐츠 마케터로의 커리어 전환
    스타트업에서 가장 많이 했던 콘텐츠 제작의 역량을 살려, 콘텐츠 마케터로 취업을 했다.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 될 이미지 콘텐츠, 유튜브 영상 콘텐츠 등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했다. 기획을 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문제는 제작을 하는 게 너무 싫었다는 것. 그 시절의 나는 완벽주의에 굴레에 갖혀 있었기 때문에,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이 너무 버거웠다. 내가 영상을 만들면 그 토씨 하나가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지. 그리고 그 때 에는 콘텐츠 마케팅의 지표가 좋아요, 댓글 수 였기에(별도의 트래킹을 하지 않았다.) 그 미미한 수치들은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다는 안정감의 지표가 되어주지 못했다.
    나에게는 막연히 시간이 해결해줄 것 같은 역량이 아닌,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있다는 자기효능감이 필요했다.
  1. 그래서 퍼포먼스 마케터가 되었다.
    그 간의 경력은 모두 리셋하고, 퍼포먼스 마케팅 에이전시에 신입으로 취업했다. 광고를 세팅하고 운영하는 일은 그간 해온 일이랑 굉장히 달랐고,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가는 느낌에 너무 재미있게 일을 했다. 콘텐츠 마케터로 찍었던 점이 선으로 이어지는 경험도 있었다. 당시 광고주가 퍼포먼스 소재 기획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는데, 나에게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입사 3개월만에 광고주가 미팅에서 나를 보고싶다고 할 정도로 만족도 높은 성과를 내며 팀장님으로부터 두 명 분의 일을 한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광고를 집행하고,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서 여러 가설과 테스트를 거치며 일을 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연차가 쌓이며 나름의 노하우들이 생기고 성장해갔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1. 퍼포먼스 마케팅은 정말 문제를 해결해줄까?
    퍼포먼스 마케팅은 숫자로 결과가 보이는 직무다. CTR, CPA, ROAS 같은 지표를 보고, 소재를 바꾸고, 타겟을 조정하고, 캠페인을 최적화한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정말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걸까? ”특히 큰 브랜드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구조가 있었다.물론 성과 최적화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예산을 안정적으로 집행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경우도 많다. 브랜드 전략, 내부 KPI, 조직 구조 등 여러 이유로 퍼포먼스 마케터가 할 수 있는 개선의 범위에는 자연스럽게 제약이 생긴다. 퍼포먼스 마케팅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최고점의 목표인 KPI를 달성하기 위한 것에 극히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1. 결국은 퇴사했다.
    다음 커리어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던 중에 참여하고 있는 커뮤니티의 멤버 중 한 분이, 정말 감사하게도 스몰브랜드의 광고를 대행하는 대행사에 크루로 연결을 해주셨다. 퍼포먼스 광고 소재를 기획하는 업무를 외주 형태로 도맡는 경험은 생각보다 꽤 달랐다. 스몰 브랜드는 구조가 단순하다. 광고 소재 하나, 메시지 하나, 랜딩 하나가 생각보다 바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단순히 효율을 관리하는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이것 하나를 바꾸면 결과가 달라진다”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퍼포먼스 마케터로 약 5년간의 커리어를 쌓아오며, 이제는 퍼포먼스 마케팅이 정말 필요한 곳에서, 유의미한 개선을 만들어보는 방식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은 퇴사를 했다.
  1. 끝나지않을 배움의 굴레
    퍼포먼스 마케팅은 분명 강력한 도구다. 특히 작은 브랜드에게는 가장 빠르게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을 할 수록 한 가지는 점점 분명해졌다. 광고 성과는 광고 세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메시지, 제품 포지셔닝, 랜딩 페이지, 브랜드에 대한 인식 같은 요소들이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요즘은 퍼포먼스 마케팅을 단순히 KPI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는 시작점처럼 생각하고 있다. 광고 데이터를 통해 어디에서 막히는지를 보고, 그 다음에 메시지나 구조를 함께 고민하는 것. 퍼포먼스 마케팅을 문제를 발견하는 가장 빠른 도구로 활용하되, 결국엔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마케팅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AI를 활용해 문제를 더 빠르게 분석하고 다양한 가설을 실험해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탐색하고 있다.

    당분간은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마케터로의 진짜 전문성을 쌓아가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려 한다. 매일을 불안감과 마주하면서도 더 많이, 더 치열하게 일해야할 테지만, 결국은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 될 것이라 믿으며 그 기록을 시작해보려한다. 우선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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